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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4.06 나는 사람을 죽인적이 있다 3
글
1.
내 동기들에 비하면 난 비교적 적은 사람을 죽인 축에 속한다.
한참을 생각했다.
'좀비와의 대화'에 초반부에서 잠자다 죽어버린 무영이 정도?
무영이 죽었다. 지난밤에 급사했다. 그의 아내가 주절거리면서 쏟아낸 말에 의하면 자명종소리에 눈을 떴을 때 죽어있더란 것이었다.
라고 소설을 시작했으니 뭐 무영의 죽음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다만, 내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 중에 행복했던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
2.
모더니즘, 다다이즘, 쉬르리얼리즘 기타 등등... 좃도 모르던 시절에,
별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절거리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은 죄다 아스팔트위를 붕붕 떠다니는, 반쯤 제정신이 아닌,
인간이라고 말하기 곤란한 인물들이었고,
소설이라 말하기 부끄러운 글 위에서 붕붕 떠다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철없던 시절의 내모습이 졸라 부끄럽다.
내가 초현실주의 선언을 외고 다녔다니. 세상에나.
단언컨데 난 그시절 앙드레 부르통의 이름만 외고 다녔지
진정한 초현실주의는 눈꼽만큼도 몰랐다.
3.
현실을 알아야 초현실을 아는 법이다. 난 현실을 좃도 몰랐더랬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지금은 많이 변했다.
한 선배의 도움으로 아스팔트 위를 붕붕 떠다니던 다리를 겨우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단 몇 Cm의 하강,
그리고 그곳에 진짜 세계가 있었다.
정말이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나의 어리석음, 나의 편협함, 나의 비겁함 등등에 눈물로 며칠밤을 보냈다.
정말이다.
4.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내가 소설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을까.
불현듯 신상웅 선생님께서 툭하면 하셨던 말들이 떠오른다.
"전봇대는 어느나라 말이냐. 전신주는 또 어느나라 말이냐. 전주다. 전주."
"아니 식당 이름이 '엉터리 식당'이 말이 되냐! 실제로 그곳이 엉터리라면 장사하기 싫다는 거고 아니라면 손님들한테 거짓말을 하는 것 아니냐. 엉터리 식당은 엉터리다!"
"소설속에서 사람 함부로 죽이지마."
그 노교수는 매 수업시간마다 강의실이 떠나갈 듯한 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소설속에서 사람 함부로 죽이는 거 아니다.
5.
문창과를 졸업하고 소설을 거의 등지고 살았다.
소설을 쓰기는 커녕 읽는 것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얼마전 영화를 한편 보았다.
여자친구에게 권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권했다.
'소설보다 이상한(Stranger than Fiction, 2006)'
사실 오늘의 포스팅은 이 영화 때문이다.
결말이 지나치게 오버한 것 아닌가,
왜 주인공은 그토록 행복한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건가.
등등 여러 의견들이 들린다.
이 영화의 중간에 문학교수는 주인공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소설가 칼비노는 이런 얘길했지. 모든 소설이 내포하는 궁극적 의미는 2종류다."
"삶의 연속성과 죽음의 필연성."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결론을 내고 싶었을까.
내가 보기에 이영화는 결탄코 죽음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 곳곳에서 삶의 연속성을 줄기차게 이야기했다.
주인공 헤롤드는 국세청 직원으로서의 일상을 살아가고,
빵굽는 처자는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 빵을 굽는다.
무덤덤한 일상을 살아가는 헤롤드가 맛본 비오는 날의 쿠키는
정말 그의 인생에 변혁을 가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은가.
심지어 우울 덩어리라 말할 수 있는 소설가도, 언제나 죽음을 꿈꾸지만
실상 삶의 연속성이라는 논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삶의 연속성과 죽음의 필연성은 꼬리를 물고 돌고 도는 한쌍의 도마뱀과 같지만,
알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제와는 조금 다르다.
삶의 연속성이 전제되어야 죽음의 필연성을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문학교수의 말처럼 헤롤드는 죽는다. 언제가 되었든 죽는다. 영원을 살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삶의 연속성이 지닌 따뜻함과 끈질긴 생명력이전제되어야 한다.
헤롤드는 영화에서 이제 막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적어도 수년을 더 행복하게 살아야만 한다.
기타도 더 배워야 하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잠자리도 더 많이 가져야 한다.
이왕이면 애도 낳아야 하고 손자까지 보면 더더욱 좋겠다.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아야만 헤롤드의 갑작스런 헤롤드의 죽음이 좀더 절실하게 다가올지도.
6.
간만에 괜찮은 영화 한편을 봤다.
그리고 불현듯 들었던 생각,
이 영화는 소설이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영화는 오로지 영화로만 존재할 수 있다.
'소설'로는 만들어질 수 없고 억지로 만든다해도 영화의 느낌을 눈꼽만큼도 살릴 수 없다.
예전에 '폰부스'를 보면서도 이거, 소설로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도 그랬고.
점점 영화들이 오로지 영화로만 빛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소설의 시대는 '안녕'인가.
그나저나 신상웅 선생님이 무척이나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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