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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05.18 [5.18 기념 포스팅] 97년 5월18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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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이면 대학 새내기때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정말이지 백지 상태의 어리버리한 착하디 착하고 순하디 순한 부산 촌놈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아. 예를 들려고 했던 친구가 이미 유부녀 이기 때문에 뭔가 쓰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튼. 난 착하고 아무것도 모르던 새내기였다.
문예운동집단 '새힘'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었다. 96학번 모 선배는 신입생중에 내가 제일먼저 지발로 새힘을 뛰쳐나갈 놈으로 점치고 있었다 한다. 어쩌면 내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맞다. 난 정말 어리버리했고 착하고 순수했다.
새힘에 발을 들여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4.30 메이데이 전야제와 5.1 노동절을 참가했더랬다. 그것은 정말이지 충격이었다. 사수대도 처음봤고, 취루가스도 처음 마셨다. 다치는 사람들도 봤고, 광분하던 사람들도 봤다. 고대던가, 연대던가, 어디였던가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여튼. 교정은 원봉당했고 노동절 행사장으로 겨우겨우 이동했던 걸로 기억한다.
보름정도 지나, 선배들이 이번에는 광주랜다. 광주. 난 그 때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광주를 찾았더랬다. 5.18? 그런 거 몰랐다. 정말 몰랐다. 그냥 선배들이 가자니 따라나섰을 뿐이었다. 맞다. 난 정말 어리고 개념이 없었고, 착했다. 지금은 이모양 이꼴이지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아직은 최루탄이 집회에서 왕왕 쓰이던 시절. 이토록 어리버리한 새내기에게 선배들은 깃발을 높이 들고 뛰는, 중대한 임무를 맡겼더랬다. 물론, 최루탄이 터지고 10분도 지나지 않아 깃돌이는 바뀌었다... -_-
자. 자. 정말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지금부터다. 그날 금남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내 여동기가 겪었던 실화부터. 그녀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지 모르지만;;; 어찌되었든 그 이야기부터.
그녀는 아마 그날 지랄탄과 난생 처음 조우했을 것이다. 가스를 내뿜으며 미친듯이 바닥을 휘젓고 다니는, 지.랄.탄. 지랄탄과 조우했을 때 응급처치 요령은 간단하다. 그냥 밟아버리면 된다. 그럼 끝이다. 그러나, 그녀는 새내기였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이었고, 설사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실물은 처음 봤을 것이며, 그때 느낀 당혹스럼움과 공포심은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상식과 지식을 그자리에서 백지 상태로 만들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녀는 너무 놀랐고, 너무 놀란 나머지 아주 크게 '헉'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헉'의 발음이었다. 내뱉는 소리가 아니라, 들이쉬는 소리로, 자신의 폐에 금남로에 뿌려진 모든 최루가스를 담아버릴 듯한 기세로, '헉~'하고 소리 쳤다. 꽤 길게. 허어억~ 그녀가 그뒤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생략하겠다.
그다음 사고를 친 건 지금은 결혼한 나의 남자 동기. 그도 마찬가지로 새내기였고 엄청나게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나는 나름 침착하게 행동했다. 몇몇 선배들의 행동요령을 숙지하고 그대로 행동했다. 일단 가방에서 치약을 꺼낸 후 눈 밑에 굵게 발랐다. 그 무게에 못이겨 피부에서 떨어지기 직전까지 발랐다. 무식해 보일정도로. 물론, 그것만으로는 최루가스를 중화시키기는 역부족.(사실 별 효과가 없다곤 본다. 있다면, 그건 플라시보 효과.) 머리에 뚫린 구멍중에서 귀만 빼고 액체로 흥건해질 정도니까. 그때 우리는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빨아들이되 입담배로 빨아 생연기인 상태의 담배연기를 눈에 후후하고 불어주는 것이다. 그럼 신기하게도 눈이 덜따가웠다. 참 신기한 게 평상시에 담배를 피다가 실수로 생연기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엄청나게 따까운데도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는 담배연기가 최루가스를 중화시켜줬던 것이다. 여튼, 중요한 이야기는 이 다음 부터다.
내가 먼저 그의 눈에 연기를 불어줬다. 한가치를 급하게 빨아서 녀석의 눈에 불어줬고 그 다음은 내가 응급치료(?)를 받을 차례였다. 그는, 담배를 한대 비장하게 물더니 한손으로 내 눈꺼풀을 까발렸다. 그리고 아주 미친듯이 담배를 빨아당긴 후 연기를 내 눈에 뿜어주었다. 그러나, 난 아무 효과를 느낄 수 없었다. - _-
그는 담배 한대를 그렇게 다 불어준 후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그는 비흡연자였고, 입담배로 연기를 불어준 게 아니라(빌어먹을!) 폐속 깊은 곳 까지 담배를 음미하고 시들시들 약효가 떨어진 연기를 내눈에 불어준 것이다. 난 다리가 풀린 그를 들쳐 업고, 뛰었다. 정말이지 악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담배덕에 사지가 풀린 친구를 부축하며 뛰었던 금남로를 난,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벙! 그날 좋더냐!!)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누구는 어디서 뭘 하는지 연락도 되지 않고, 한놈은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나나 그들이나 다들 서른 즈음이 되었고, 문예운동 집단 새힘은 밝은 문학동아리 새힘으로 변했다가 시대와 소통하는 새힘으로 바뀌었다.
난 이제 정말이지 조금도 착하지 않고, 조금도 순수하지 않다. 그렇다. 오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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